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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年2月1日

활기의 그늘에 전쟁의 상처가 – 베트남 –

민의련 50주년 기획 평화와 의료 복지를 배우는 아시아 여행

2004년 9월16일, 민의련의 지지연대 시민그룹인 공동조직 여러분과 민의련 직원 총 23명이 베트남으로 출발. 호치민시와 하노이시를 방문했다.

왕성한 힘이 넘쳐나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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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넘쳐나는 오토바이. 무엇이든지 싣는다.

우선 놀란 것은 오토바이의 수.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도로에 가로로 한 열 줄 정도가 달리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 헬멧은 쓰지 않고, 한 대에 4명이 타기도 하고! 신호는 거의 없고, 교통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오토바이는 과일, 야채, 옷, 빵, 닭이니 돼지 등, 무엇이든지 싣고 달린다. 상거래도 왕성하여, 거리 여기저기에 물건들을 펼쳐놓고 팔고 있다.

시장경제가 도입되고부터 편리해지고는 있지만, 빈부의 차는 더해가고 있는 듯하다. 깔끔한 양옥집 이웃에 함석지붕의 가건물 집이 있어, 풍광도 건물구조물도 복장도 지닌 물건도 모두가 새것과 헌것이 한데 뒤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밝고 명랑한 데다 태평스러우면서 의기왕성한,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기세가 넘쳐나는, 지금의 일본에는 없는 힘을 느꼈다.
 

병원이 적고 침대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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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침대 부족. 환자가 자신의 접는 간이침대를 가져와 쓰고 있다.

의료면에서도 여러 나라와 기업으로부터의 지원으로 MRI 등의 최신의료기기가 도입되어 있는 큰 병원이 있는가 하면, 병원의 수는 전체적으로 아직 적고, 병원들마다 환자가 넘쳐나는 상태였다. 침대도 모자라고, 접는 간이침대를 집에서 가져와 자고 있는 환자분들이 있는 것에 놀랐다.

진료비는 2만 돈(약 2백 엔)으로 정해져 있어서, 가난한 사람도 비교적 진찰은 받기 쉬우나, 병상료는 1일 15달러. 5일간의 입원비가 한달 평균 급료이기에, 검사나 입원을 하게 되면 상황은 어려워지게 된다.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로서, 신문에서도 연일 다뤄지고 있다고 한다.

의료보험은 국가공무원이나 샐러리맨이 가입하고 있고(인구의 15%) 가능한 병원은 지역별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대부분 기능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의사의 급여도 낮아, 월수입 2백 달러 정도. 교원의 급여와 거의 같은 액수이며, 연수의사는 급료가 없다. 중노동에 비해 대우가 좋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의학부를 졸업해도 6할 정도밖에 의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남녀평등의 정신은 뿌리박혀 있어, 어느 병원도 의사를 포함해 여성 스텝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고엽제의 영향은 2세, 3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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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바그마이 병원에 있는 분노한 표정의 여성상.

호치민 시의 전쟁증적(證跡)기념관에는, 베트남전쟁시 비참한 사진과 고엽제피해로 보여지는 기형아를 호르말린으로 보존하고 있는 것 등이 전시되어 있다. 왜 인간은 이러한 잔인한 전쟁이 가능한 걸까. 할 말을 잃고 만다.

고엽제의 영향으로 장애를 입은 어린이들의 치료, 교육, 훈련의 시설 <평화의 마을>에서는 혼 소장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고엽제의 영향은 2세, 3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에 베트남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엽제의 피해에 대해서, 농촌에서는 교육도 충분치 않아서,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도 다음엔 괜찮으리라는 기대로 아이 낳기를 계속해, 형제전원이 모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가계가 힘겨운 형편에 놓인 가정도 많다고 한다.

하노이에서는 바그마이 병원도 견학했다. 1972년에 미군이 4차례나 공습. 많은 환자와 의료종사자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폭탄이 떨어진 장소에 공습으로 죽은 소녀를 안고 주먹을 하늘에 쳐올리고 분노의 표정을 하고 있는 여성상이 있다.

바그마이 병원은 하노이의 중심적인 의료시설로, 여기를 파괴하면 병사의 활동도 불가능해지므로 일부러 병원을 겨냥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지하참호에 3백 명의 환자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생매장되어 구조활동은 곤란의 극치였다고 한다.

이라크의 파르쟈에서도 같은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가? 분노가 끓어온다.
 

일본군의 수탈로 2백만 명이 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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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지 안에 있는 <200만인 아사기념비>.
일본군의 강제식량징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하노이 거리 가운데의 노지에 들어서면, 주택지에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강제식량징발로 인한 2백만인 아사기념비가 있다. 일본군이 군용, 비축용, 국내의 공급용으로서 4분의 1 이하의 싼 가격으로 쌀을 수탈하고, 쌀과 옥수수 대신 황마 등의 재배를 강제했기 때문에 원래도 겨우 나던 쌀 농작물이 바닥이 나, 대기근이 일어나서 2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아사했다고 한다. 집주인이 집을 지으려 땅을 파면 백골이 나와 사실이 명확해졌다고 한다. 일본군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여기에서도……

역사를 철저히 배우고 전하여,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비는 향을 피워올렸다.

요시다 치아키 (전일본민의련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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