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eul

2005年9月1日

아시아를 평화의 공동체로

– 일본 중국 한국이 역사교재를 공동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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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국 한국에서 공동편집한 역사교재

한중일 역사 공동교재의 일본측 제작멤버
다와라 요시후미 씨로부터 듣다

일중한 3 국의 연구자들이 공동편집한 역사교재 < 미래를 여는 역사 – 동아시아 3 국의 근현대사 > 가 3 국에서 잇달아 출판되었습니다 . 일본측 제작멤버의 한 사람인 다와라 요시후미 씨 (` 어린이와 교과서전국네트워크 21` 사무국장 ) 로부터 들었습니다 .

– 3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데 ,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요 ?

도쿄 , 베이징 , 서울에서 국제회의를 10 회 거듭했습니다 . 각 국이 주제별로 원고를 분담하고 , 메일로 2 개국에 보냅니다 . 번역해서 , 각 국의 위원회에서 의견을 정리해서 모읍니다 . 의견을 서로 내서 수정하는 , 그런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 회의 자체는 통역을 넣어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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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

매맞은 쪽의 수용방식

– 역사인식의 차이가 크거나 하지는 않았는지요 ?
일중한 서로의 나라에서 역사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 연구의 경위가 다르고 역사교육도 다릅니다 . 역사교과서도 물론 다릅니다 . 그러므로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해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
원폭을 예로 들어봅시다 . 중국과 한국은 < 원폭투하가 일본의 침략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 고 하는 견해입니다 . 실제로 아시아권 나라들의 교과서는 모두 그렇습니다 . 그러나 원폭이 비인도적인 대량살상무기라고 하는 측면을 ,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
도쿄대공습 등에 대해서도 < 일본은 미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받았다 > 고 씁니다 . 한편 일본은 중국에 대해서 중경 등의 무차별폭격을 먼저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도 물론 씁니다 .
그러나 중국 쪽은 < 일본은 침략의 보복으로서 , 공습을 받았다 . 그러나 중국은 일본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무차별폭격을 당했다 . 그러므로 무차별폭격이라고 해도 도쿄공습과 같은 예로 둘 수 없다 > 고 한다 .
일본의 제작멤버는 일본이 침략국이며 , 가해자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쓰고는 있으나 , 피해자측의 수용방식은 상당히 틀립니다 .
때린 쪽이 맞은 쪽을 충분히 이해할 요량으로 있다고 하더라고 , 맞은 쪽의 수용방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토론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 이것을 두고두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역사 인식을 공유하도록

–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
2001 년의 < 새역모 > 의 교과서문제입니다 . 우리들은 그것을 편협한 내셔널리즘과 역사왜곡 , 전쟁찬미의 교과서라고 비판해왔습니다 . 그것으로는 , 아시아 사람들의 우호관계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 우리들은 아시아 , 특히 동아시아가 전쟁의 지역이 아닌 평화의 공동체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 그 전제가 되는 것은 , 역사에 대한 인식의 공유입니다 . 이를 위해서는 어떤 역사를 써야 좋은가 , 하고 생각했습니다 .
일본도 한국도 중국도 , 교과서는 자국중심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 적어도 동아시아 3 국이 국경을 제거하고 3 국과 관련된 역사를 열린 관점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

근현대사에 초점을 맞춰서

– 이 책은 어떻게 활용해 나가게 되는지요 ?
올해는 교과서채택의 해입니다 . 이러한 때 세상에 내놓아 , < 새역모 > 의 교과서를 비판함과 동시에 , 우리들의 대안을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 3 국은 고대부터 관계가 깊지만 , 관계가 가장 깊었던 19 세기 중엽부터 100 년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
그러나 일본의 교과서에 쓰여지지 않은 사실이 많이 있습니다 .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사용해주시면 좋겠는데 , 지금의 일본의 상황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 사립에서는 제약이 없으므로 , 꼭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 서점과 여러 집회에서 보급해 나가게 됩니다 .
한국정부는 , 이 책에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 5 월 26 일에 한국에서 거행된 일중한의 공동기자회견을 한국의 신문은 상당히 크게 보도했습니다 . 1 면 톱 기사로 다룬 신문도 있었습니다 . 회견후의 출판기념회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비디오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 기념회에는 국무총리 , 대통령의 홍보담당 비서관이 출석했습니다 .
한국 대사관 사람들의 후일담에 의하면 , 6 월의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수상에게 이것을 읽어보라고 하자 , 수상이 읽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

전쟁의 사실을 올바르게 알자

– 민의련의 < 언제나 건강 >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지금 이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사람들은 일본의 전쟁에 관한 역사에 대해서 , 학교에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습니다 . 1950 년대 중반부터 70 년대 중반까지 , 교과서검정으로 전쟁의 사실을 쓰지 않아 왔기 때문입니다 .
남경학살사건으로 말하면 , 전후 바로 , 46 년 발행된 초등학교 교과서 < 나라의 발자취 > 에는 내용은 전혀 없어도 , 남경을 황폐화시켰다고 했고 , 중고교의 교과서 < 일본의 역사 > 에는 남경에서의 폭력적인 학살행위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
그러나 그 후 , 교과서검정이 강화되어 , 50 년대 후반에는 , 남경사건을 쓴 검정교과서는 전부 없어졌습니다 . 남경학살이 등장하는 것은 , 70 년 ` 이에나가 교과서재판 ` 의 위헌판결이 나온 이후입니다 .
74 년판 고등교과서 1 개사 , 75 년판의 중학교과서 2 개사에 쓰여져 , 전체 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은 중학교과에서 84 년판 , 고등교과서에서는 85 년판입니다 . 전후 40 년 동안 일본의 중고교생에게는 남경학살사건을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정부와 자민당 의원 등이 역사를 왜곡하는 폭언을 해도 , 국민의 비판이 약한 것입니다 .
그러므로 , 독서회 등을 개최하는 것도 대단히 좋을 것 같습니다 . 전쟁체험과 자신의 체험을 아울러가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 함께 읽어나가면서 ,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 ( 질문 , 정리 – 오타 고이치 기자 )

* <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 전화 03-3265-7606 팩스 03-3239-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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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열린 제 5 회 국제편집회의 (200 년 11 월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 새역모 ) 교과서
일본의 전쟁은 ` 자존자위 ` 의 ` 아시아해방 ` 을 위한 올바른 전쟁이었다며 ,
어린이들에게 야스쿠니신사의 역사관을 심으려고 하는 교과서 .

이에나가 교과서 재판
고등학교 일본사교과서 < 신일본사 >( 삼성당 ) 의 집필자인 이에나가 사부로 씨가 , 교과서 검정은 헌법위반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일으킨 일련의 재판 . 1965 년 제소 제 1 차 소송 , 1967 년 제 2 차 소송 , 1984 년 제소 제 3 차 소송이 있다 . 1997 년의 제 3 차 소송의 최고판결 을 끝으로 종결 . 1 차 소송으로부터 최고판결까지 32 년이나 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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