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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年5月1日

고난은 운동과 연대로 넘어서

전일본 민의련 제37회 총회 – 나가세 사무국장으로부터 듣다

 
전일본민의련은 3월 2일 ~ 4일 까지 센다이시에서 제37회 정기총회를 열고, 앞으로 2년간의 운동방침을 정했다. 전일본 민의련 나가세 후미오 사무국장은 “고난은 운동과 연대로 넘어선다는,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총회”였다고 말했다.

전일본민의련이 총회에서 강조한 핵심은, 슬로건에 응축되어 있다.
 

민의련의 역사를 서로 배워가며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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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 민의련 나가세 후미오 사무국장

우선, 첫 번째 슬로건이다. 올해는 일본국 헌법이 공포된 지 60년. 또한 최초의 민주진료소(병원)가 생긴 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60년 전에는 국민개보험제도가 없었고, 국민에게 있어서 ‘의료’라는 것은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의료를 민중의 손에”라며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각지에서 민주진료소를 설립했다. 그것들이 1953년에 합류해, 전일본 민의련이 생겨난 것이다.
그 이래로, 어떤 때라도 생명의 평등이라고 하는 이념을 져버리지 않고 분발해온 민의련의 역사를, 이러한 어려운 상황일수록, 다시 한번 직원과 공동조직이 함께 배워나가자 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헌법의 힘으로, 일체의 전쟁을 거부해왔다. 전쟁 전의 대일본제국헌법은 56년 계속되었으나, 그 가운데 계속 전쟁은 되풀이되었다. 지금 헌법을 바꾸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무슨 소리, 60년이 지나도 생명력이 있다!”며 호소하고, 더더욱 일본국헌법이 빛을 발하는 시대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을 첫 번째의 슬로건은 선언하고 있다.
2년 전의 총회 때, 아직 ‘9조모임’은 탄생해 있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은 전국에 4000개 이상이 생겨났다. 민의련에서도, 오키나와 헤노코의 미군기지건설 반대행동에 참가한 청년직원이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에 기지를 만든다니, 말도 안 된다”며, 직장에서 9조모임을 만드는 등, 거대하게 확대되고 있다. 정치적인 것을 말하면, 그냥 됐다고 하는 분위기, 친구들과 말하면 왠지 생뚱한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평화와 헌법을 지키자”고 하는 활동들이 확대되고 있다. 2년 전과 비교해서 직장과 지역에서도 주체적인 힘이 키워지고 있다. 여기에 헌법개정을 용납하지 않는 ‘전망’이 있다고 본다.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

두 번째 슬로건은, 우리들이 활동해 나가야만 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업소와 지역에서 구체화하고 분명히 해나가야 한다.
민의련의 의료활동에는 수입이 되지 않는 것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홋카이도로부터의 보고인데,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집에 가고 싶다는 환자분의 바람을 수용해, 몇 십 킬로 떨어진 자택까지 의사와 간호사가 시중을 들며 동행, 일시퇴원을 실현했다. “환자분과 철저히 마주보자”며 직원 동료끼리 서로 격려하고 실현한 활동이다. 최후까지 인공호흡기를 거부한 환자분의 유서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왔는데, 그 유서에는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계 또한 끼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들 정말 감사합니다. 계속 여러분들을 응원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지키는 활동에서는, 국민건강보험증을 몰수당한 사람들과 함께 관청에 가서, “인간의 생명을 내버릴 참인가?” 하며 보험증발급을 강하게 추궁한 예도 몇 번이고 있었다.
이번 총회는 “민의련에서 일하길 잘했다”고 하는 감상이 모아졌다. 눈앞의 환자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경험이 공유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옵저버로서 참가한 공동조직 분들도, 지역사회에서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민의련과 함께 지탱해 도와나가고 싶다며, 민의련의 사업소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는 생각들이 모아지고 있다.
아스베스트(석면)에도 전력으로 활동해나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아스베스트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만 발증하는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중피종(폐암의 일종)의 경우, 진료해본적이 없다고 하는 의사도 꽤 있다. 그렇다면 경험이 없다는 것으로 그만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마모토의 미나마타병 재판에서도, 투쟁해나간 의사들은 원래 미나마타병 전문의가 아니었다. 지역의 요구에 입각해 대학에서 연수를 받는 등, 전문성을 몸에 익혀, 배우면서 싸워온 것이다.
아스베스트(석면) 문제는, 우리 민의련이 시대와 어떻게 마주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며 과제라고 생각한다.
 

강한 운동의 물결을 지역으로부터

올해 4월의 진료보수, 개호보수의 마이너스 개정에 의해 민의련 안에서도, 이와 같이 하면 수입이 20~30%나 떨어지는 곳이 많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잔재주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연대의 힘과 투쟁으로 돌파하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고 마음을 다잡는 총회였다. ‘닥터웨이브’ ‘널스웨이브’ ‘이용자웨이브’ ‘환자웨이브’등 강력한 운동을 지역으로부터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도 확인하였다.
또한 지역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 고독하고,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못하고, 개호에 고통스러워하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 혼자 죽어가더라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더욱 공동조직과 손을 잡고, 지역에 “인권 안테나”로 경계망을 둘러쳐, 분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민의련은 무엇보다도 바로 눈앞의 환자를 지켜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시에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좋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충실한 사회보장을 지향하며 분투하는, 의료, 복지의 기관이다. 병실차액대금을 일절 받지 않고, 지역의 재산인 민의련의 사업소를 지키는 것에도 노력하고 있다.
그 원동력은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들의 조직은 무엇을 중요시해 왔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도 민의련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총회에서는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등, 민의련의 존재 의의에 관련한 토론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민의련은 과연 무엇을 지향하는 조직인가, 누구와 연대하는가를 오늘날의 정세로부터 응시하고 변화시켜나가는 논의의 출발점이 된 총회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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