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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年6月30日

언제나 건강 2009년 5월 품격이 있는 나라 – 쿠바 나가세 후미오 (전일본민의련 사무국장)

전일본민의련은 평화와 인권이 꽃피는 [또하나의 일본]탐구의 일환으로, 1월17일부터 24일 쿠바시찰을 거행했습니다. 총 39명 중 의사가 12명. 나가세 후미오 사무국장의 보고서입니다.

주목되는 [쿠바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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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품에 안겨 유아진료소에. 오른쪽이 엄마. 복합클리닉의 모습.

‘쿠바의료’가 주목받고 있다. 마이클 ․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에는 9 ․ 11사건으로 구조를 담당했던 자원봉사 구조원과 전 소방관들이 쿠바로 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들은 구조활동 중 부상을 입고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 보장 내용의 불충분함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충분한 치료를 받을수 없었다.
고통받고 있는 그들에게 쿠바는 무료로 의료지원을 실시. 동업종에 있는 소방관들은 그들의 구조활동에 경의를 표하고, 격려했다.
이 영화는 의료비부담으로 고통받는 일본에도 큰 반향을 불러왔다. 요시다 타로가 쓴 [세계가 쿠바의료를 모범으로 삼는 이유]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허리케인의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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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 검사풍경. 검사기구가 죽 늘어서있다.

카리브해 작은나라 쿠바는 미국으로부터 겨우 145 킬로미터. 그러나 일본으로부터는 캐나다를 경유해 이틀이나 걸리는 곳.

하바나 공항에 내려 다시 버스로 이동하면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본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스페인령 시기의 모습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 작년에 3번이나 기습해온 대형 허리케인으로 인한 상흔이 아직껏 남아 있다. 식료품이나 일용품의 배급을 기다리는 시민들. 자동차는 1950년대 미국산 자동차가 눈에 띈다. 빈말이라도 ‘풍요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리엔 구걸하는 사람이 없고, 노숙자 한명 볼 수 없었다.
올해는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한 쿠바혁명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거리엔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의 동상이 전혀 없었다. 쿠바 국민들에게 그들은 영웅이 아니던가? 쿠바사람들에게 물으니, “왜 동상이 필요한가?”, “그들은 우리의 동료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구대비 의사수는 일본의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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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판도펠 안과병원

쿠바의료 탐방은 실제 4일간. 쿠바보건복지부에서 주최한 강연과 쿠바우호협회 방문, 가정의원과 폴리클리닉(복합의원) 견학, 감염증 연구와 백신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2곳의 국립연구소, 안과병원과 대규모병원,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을 방문하는 등 충실하고도 초과밀(?)한 일정이었다.

쿠바의 면적은 일본 ‘혼슈’의 절반이고, 인구는 1,124만명으로 ‘토쿄도’와 거의 같다. 그러나 의사수는 72,000명으로 인구 대비, 일본의 3.2배이다. 그중 약 26,500명이 해외에 파견되어 있다. 재해지원이나, 제3세계 빈곤극복과 건강관리지원, 거기에 외화획득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이 인원을 제외하고서도 의사수는 인구대비 일본의 2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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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지산골이라 하더라도 의사가 배치되고 있고, 건강관리대장으로 전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며, 보건예방활동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으며, 평균 주민 750명에 1인의 가정의가 있어서 언제라도 건강상담을 해준다.

쿠바에서는 24개의 의과대학이 있다. 졸업후 3년간은 지역의료에 근무해야 하며, 그 이후에 전문의료나 연구로 진학할 것인가 혹은 지역의료를 담당할 것인가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의사의 48.6%가 지역의료를 담당하고, 의사의 약 90%는 여성이다.
통상 검사나 간단한 수술은 폴리클리닉에서 시행하며, 인구 1~2만 명 당 1개소 정도다. 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안과나 심장전문병원 수 십 개소와, 이식의료도 시행하는 대규모병원도 있다.
안과에서는 베네수엘라와 공동으로 [기적계획]이 진행 중이다. 중남미의 백내장을 근절시키기 위해 시작되어, 아프리카도 대상국가가 되었다. 견학한 안과병원에서는 사람이 넘쳤고, 근대적인 시설과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다. 수술 대기 기간은 길어야 5일이라고 한다.

Hib 백신도 대량생산 가능

거의 반세기에 걸친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에 더해진 소련의 붕괴로 인한 물자공급난이 한층 더 어렵게 되었지만, 사탕수수 등 국산지료를 연구한 의약품과 백신을 개발, 적지않은 나라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백신은 쿠바가 자랑하는 분야로 모든 아이들에게 13종류의 백신을 접종하고, 1962년 소아마비 근절 이래, 9개의 전염병은 이제 ‘과거의 병’이 되었다.

근절시킨 전염병 및 연도
폴리오(소아마비) 1962
말라리아 1967
신생아파상풍 1972
디프테리아 1979
이하선염후수막뇌염 1989
선천성풍진증후군 1989
홍역 1993
풍진 1995
백일해 1997

세균성수막염도 hib백신을 모든 아이들에게 접종해 근절에 가깝다. 일본에서는 작년 12월에야 겨우 발매한 상태에다, 본인부담이 3만엔. 게다가 공급량도 적어 의료기관에서는 월 3개밖에 사용할 수 없다.
쿠바에서는 히브백신의 생산이 연간 2,000만개가 가능해서 일본정부의 승인이 있다면, 언제라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반세기전 전국적으로 소아마비백신 수입을 위한 운동이 있었던 것처럼, [Hib백신 긴급수입운동]이 요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이즈감염율도 낮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철저히 하고, 13세까지는 성감염의 위험성을 교육한다. 에이즈백신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임산부 검진은 최저 12회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 국민 1인당 소득은 일본이나 미국의 35~40분의 1인 가난한 나라지만, 유아사망률, 5세까지의 사망률, 평균수명은 미국을 능가하는 높은 수준이다.

28개국의 의학생에게 무료 교육

1999년에 설립된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도 방문했다. 새파란 카리브해에 면한, 밝은 햇살 속에서 젊은 학생들이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여학생이 많다. 이 대학은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의사가 부족한 여러 국가의 보건 ․ 예방 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의사를 육성하고 있다. 매년 1,500명의 학생이 입학하고, 지금까지 28개국 6,500명이 졸업했다.
학비나 체재비는 전부 쿠바정부가 부담하고 있으며, 졸업 후 모국으로 돌아가도 인터넷 등을 통한 지도와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쿠바는 [제3세계에 대한 공헌]을 사명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온 학생도 있다. 가난해서 국내에서는 의학부에 진학할 수 없는 학생을 쿠바에서는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그리고 풍요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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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차로 퇴원하는 환자. 입원할 때는 이웃사람들이 데려오기 때문에 응급차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시찰은 쿠바대사관, 쿠바우호협회 등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출발 전 간담회에서 페르난데스 주일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아마 가난한 상황에 놀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민생활은 경제봉쇄 등으로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재산’이 있습니다. 그것은 쿠바가 ‘인간중심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쿠바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에 대한 의료와 교육만큼은 무료로 제공해 왔습니다.”
단 4일간의 방문이었지만,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빈곤이란 과연 무엇이며,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 였다. 실제로 생활 향상을 바라는 국민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경제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가 쿠바가 직면한 큰 과제다. 또한 혁명 1세대로부터 다음세대로 쿠바 건국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과제에도 직면해 있다.

그러나 지금 대미종속을 거부하는 중남미의 연대는 확대되어, 내년 2월에는 [중남미 ․ 카리브해국가기구]가 미국과 캐나다 이외의 전미대륙 33개국 참여로 발족한다. 크게 주목하고자 한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다.

1960년, 의사였던 체 게바라는 이런 연설을 했다. “단 한사람의 인간의 생명은, 이 지구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의 전 재산보다도 100만 배의 가치가 있다. 이웃을 위해 정성을 다한 긍지는,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에 비할 수 없이 귀중하다. ” 민의련 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쿠바는 ‘품격 있는 나라’다”- 참가자 중 한 분의 말씀. 정말 완전 동감이다.

글 히로세 후미오(전일본민의련 사무국장)
사진 히로타 노리타케 (전일본민의련 사무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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