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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年9月3日

언제나 건강 2010년 8월 민의련강령 실천의 현장을 가다 !! 무료 소액(저가)진료사업으로 지역의 은신처로 고치현 – 우시오에진료소

49년 만에 개정되어, 버전업 된 민의련 강령. 생명과 건강,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민의련이 분발하는 그 근본에는, 강령에 제시한 이념이 있습니다. 그 실천을 소개하는 새로운 연재. 제 1회는, 생활보호자를 대상으로 의료비를 감면하는 ‘무료 저가(소액)진료사업’입니다. 고치현의 우시오에진료소를 방문했습니다. (글/ 다케다 츠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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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코씨

“지금 살아 있는 것도 오카무라 씨 덕분이에요. 정말 큰 신세를 졌어요. 토모코 씨(가명, 48세)는 오카무라 케이스케 사무국장을 향해서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교통경비원 일을 하면서, 아들 류지 씨.(가명, 24세)를 여자 혼자의 힘으로 키워왔습니다. 시기에 따라서 주 2 – 3일밖에 일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몸상태도 수입도 안정되지 않은 채, 집세를 체납하기도 해서, 생활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국민건강보험료의 납입은 언제나 나중으로 미루게 되고, 통상 보험증이 아닌, 유효기간이 짧은 단기보험증이 발행되어 있었습니다.
류지 씨는 이지메 등이 원인으로, 중학교 때부터 히키코모리(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음)가 되기 일쑤. 천식 외에도, 통풍(요산성관절염)과 좌골신경통 등의 병을 안고 있었지만, 의료비를 지불하지 못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작년 8월, 류지 씨의 소변에 피가 섞여나왔습니다. “게다가 오른쪽 눈이 안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하더라구요”라는 토모코 씨.

# 무료 저가 진료사업이란?
사회복지법에 근거하여, 생활이 곤경에 처해 의료비 지급이 곤란한 사람을 대상으로, 환자부담분의 면제 또는 감액을 거행하는 사업. 전일본민의련은 동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활동을 전국의 가맹사업소에 호소했다. 2009년 1년 동안, 새롭게 61개소가 사업을 개시하여, 총 141개 사업소로 확대되었다.

예삿일이 아니라고 느낀 토모코 씨는 10월 20일, 고치 시청에 전화로 상담. 그러자 시청에서는 10월 1일부터 무료 저가 진료사업을 시작한 우시오에진료소를 소개한 것입니다.
“진료소에 전화를 하니까, 오카무라 씨가 노면전차의 정류소까지 차로 마중나와 주셔서…”
류지 씨의 혈압을 재어보니 280! 전철역에서부터 20분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오는 것 자체가 목숨이 걸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고혈압에 더해져, 심부전과 견부전까지 , 고치생협병원에 긴급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고혈압 약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도 걱정되는 상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토모코씨는 “그래도 ‘병이 안 좋아진 시점하고 (무료 저가 진료)사업의 출발시점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고 아들이 말하더라구요”라고 합니다.
“만약 진료소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들을 죽이고 나도 죽었을지 몰라요…”
참으로 ‘무료 저가 진료사업’이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취재중에도 갑작스레 날아드는 상담요청

사업개시가 1년도 지나지 않았으나, 토모코 씨의 아들처럼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참았다가 병원으로 달려오는 환자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요코 씨(가명, 59세)도 그 중 한명. 야외생활을 부득이하게 할 수밖에 없는 미요코씨는, 올해 2월, 공원에서 홈레스 동료인 한 ‘아저씨’에게서 들어 진료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3년 정도 전부터 가슴에 응어리 같은 게 있어서, 진료소에서 진찰을 받으니 ‘유방암입니다’ 하더라구요. ‘설마!’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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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코씨

종양은 3센치나 되었고, 바로 입원, 수술. 지금은 살곳도 정해져, 생활보호수급자도 되고, 치료를 받고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청소원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는 미요코 씨는, 시급 600엔대의 저임금이기 때문에 집세와 광열비를 다 낼 수 없어서, 거처를 잃었던 것이었습니다. 공원에서 일을 다니는 생활을 1년이나 계속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 될대로 되라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아저씨 한분이 ‘어디 안좋은 데 없냐’고 물어봐주셨죠. 정말 목숨을 건졌어요.”
실은 이 ‘아저씨’ 도 무료 저가 진료사업을 이용하여 진료소에 온 적이 있는 환자분이었습니다. 만성폐렴, 방광암 등의 진단을 받아, 치료를 개시한 ‘아저씨’는 공원에서 안면이 있었던 미요코 씨가 걱정이 되어 말을 건 것이었습니다.
미요코 씨 집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에도, 오카무라 사무장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진료소에서 “다리가 저린다는 남자분으로부터 상담이 들어왔다!”고. 긴급하다는 판단을 한 오카무라 씨는 진료소로 급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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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중에도 상담이 들어온다. 대응하고 있는 오카무라 사무장

남성은 40대로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습니다. 작년 4월까지 나고야시에서 일용직으로 경비일을 했지만, 생계가 꾸려지지 않아서 낙향. 고치시에서 일을 찾지 못하고, 연금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80세)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빨리 나가라”고 하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악화되고, 최근 반년간 제대로 된 식사도 못했다고 합니다.
“한달 전부터 다리가 저리기 시작해서…. 지금 다시 속에 혈관에 바늘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아파요”라며, 불안한 표정이었습니다. 생활고로 인해 빚도 있었습니다.
“오늘 바로 생활보호를 신청합시다. 변호사에게 상담하고 자기파산 수속도 밟아야 합니다”라고 오카무라 상이 말합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보고 연이어…

사업을 개시한 작년 10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 동안, 진료소에는 70건 가까운 상담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 49건에 면담 및 대응을 했습니다
사업을 이용한 것은 38건(59명), 위독한 환자도 많아, 13명이 입원 4명이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우시오에는 고치시 안에서도 고령화율과 생활보호수급율이 높은 지역. 진료소에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시오에 지역의 역사와 지리, 주민의 생활상황 등을 조사하고, 현황을 파악하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역에 확대되는 빈곤의 실태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는 오카무라씨.
밤중에 반신마비를 일으키면서도, 아침이 되어서야 이윽고 상담을 해온 남성(40대), 전기나 수도 등의 생활라인이 중지되어 동상이 앓고 있던 남성(50대), 만족스런 식사를 할 수 없어, 키가 170인데 몸무게는 35킬로그램까지 떨어진 남성(60대)도 있었습니다.
4살부터 13세까지 3명의 아이와 “일가의 집단자살까지 생각했다”는 50대 부부도 있었습니다.
아내는 우시오에진료소의 사업을 소개한 신문기사([고치신문]2월 24일자)를 보고,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지역의 신문이나 텔레비전, 라디오가 이 문제를 다루었고, 상담자는 고치시내 전역, 나아가 이웃의 지역에서도 방문해왔습니다. 9할이 “보도를 통해 진료소를 알았다”며 일종의 ‘갑자기 ’ 신청이 들어오는 상담들. 국가보험료 체납에 의해 자격증명서, 단기보험증(13%)이 눈에 띄는 것은, 원래 건강보험의 가입 수속을 하고 있지 않는 무보험자(61%)의 존재입니다.

진료소의 평판도 높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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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요시히코 소장

이 사업에 대해서, 진료소의 직원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황급히 달려온 환자들의 실태는 심각한 경우가 많고,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고, 수간호사 오카다 츠야코 씨가 말합니다.
한편에서는 또 “목숨을 살리는 것이 가능”했던 기쁨과 실감이, 일하는 직원의 긍지와 확신이 되고 있습니다. 소장인 우치다 요시히코 의사는 “얼씨구나 춤을 추며 거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쾌감이었습니다”라며 아주 유머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은 환자분이 어떤 곤란한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의료비를 깎아준다는 게 안되는 일이잖아요. 벌률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이 사업이면, 당당하게 합법적으로 ‘무차별 평등의 의료’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의사로서 이 이상의 기쁨은 없습니다.”
오카다 씨도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면 ‘구해줘야지’하는 마음 누구나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개인만으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것도 있지요. 그런 것이 이 사업으로는 가능합니다”라며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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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소가 지역의 네트워크의 중심으로”라며 아이들을 위한 여름방학 무료강좌 개강을 계획하고 있다.

평판이 높아지고, 진료소에 처음 오는 환자들도 늘어났습니다. “진료소를 지원하고 싶다”며, 출자금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업으로 감면된 의료비는 진료소의 부담이 되지만, “경영적으로도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환자분들, 조합원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말하는 우치다 소장.
“무료 저가 진료사업은, 민의련 진료소의 심볼이네요”라고 기자가 말하니, 일순간 당황하는 표정을 보인 오카다씨. “ ‘심볼’이라고 하면 치켜세워서 장식해두는 이미지에요. 그런 게 아니고, 더 가까운, 환자를 위해 가능한 것중 한가지, 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오카다씨는 무료 저가 사업을 “꼭 다른 병원과 진료소에도 확대시키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사진/ 와카하시 이치죠)


민의련 강령

우리들 민의련은, 무차별 평등의 의료와 복지의 실현을 지향하는 조직입니다.

전후의 황폐 속에서, [무산자 진료소]의 역사를 계승하고, 의료종사자와 노동자, 농민, 지역인들이 , 각지에서 ‘민주진료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일하는 사람들의 의료기관”으로서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을 결성했습니다.

우리들은 생명 평등의 기치를 높히고, 지역주민의 절실한 요구에 부응하는 의료를 실천, 개호와 복지 사업을 향한 활동을 확대해왔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선 친절하고도 좋은 의료를 진전시키고, 생활과 노동으로부터 질병을 파악하며, 생명과 건강에 관한 그 시대의 사회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또한 공동조직과 함께 생활향상과 사회보장의 확충, 평화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운동해왔습니다.
우리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업소의 집단소유를 확립하며, 민주적 운용을 지향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본국헌법은, 국민주권과 평화적 생존권을 구가하며, 기본적 인권을 인류의 오랜 동안에 걸친 자유획득의 성과이며 영구히 침범할 수 없는 보편적 권리로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헌법의 이념을 높이 올리고, 지금까지의 행보를 더욱더 발전시키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중되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ㅡ. 인권을 종중하고, 공동영위로서의 의료와 개호, 복지를 진전시키며,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킵니다.

ㅡ. 지역 및 각 직업영역의 사람들과 함께, 의료기관과, 복지시설 등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안심하고 살아나갈 수 있는 지역사회 만들기를 진전시켜 나갑니다.

ㅡ.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고, 학술 문화의 발전에 노력하며, 지역과 함께 나아가는 인간성 풍부한 전문직을 육성합니다.

ㅡ. 과학적이며 민주적인 관리와 운영을 관철하고, 사업소를 지키며, 의료, 개호, 복지 종사자의 생활향상과 권리확립을 지향합니다.

ㅡ.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권리로서의 사회보장 실현을 위해 싸워나갑니다.

ㅡ.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파괴하는 일체의 전쟁 정책에 반대하며, 핵무기를 없애고, 평화와 환경을 지킵니다.

우리들은,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개인, 단체와 손을 잡고, 국제교류를 도모하며, 공동조직과 힘을 합쳐 활동합니다.

2010년 2월 27일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 제 39회 정기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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